라오스는 어떤 나라인가?

라오스 기원

 

라오족은 중국 운남지대에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살아갔으나, 몽고 침략에 국가가 멸망하고

지금의 라오스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14세기 초반까지 부족은 결합되지 못해 부족국가로 살아갔으나 파흠응왕이 통일 라오스 왕조인

'란쌍왕조'를 세우면서 기록역사상의 최초의 라오스가 형성됩니다.

16세기에는 쎄탓티랏왕조가 들어서면서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천도하고

루앙프라방에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강성했던 버마의 침공도 막아내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이후 씨암(태국)의 공격에 나라전체가 파괴된 이후에는 대부분 식민생활을 하게 됩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일본에 연이어 식민지배를 받고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독립하려하지만

소련과 미국의 냉전시대의 희생양이 되서 국내정세는 악화일로가 됩니다.

1975년 라오인민혁명당이 베트남의 기세에 힘입어 정권을 장악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지만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최근에야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은 라오스 5위의 경제지원국 위치에 있습니다.


 

지금의 라오스 


정식 명칭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면적은 23만 6800㎢로 남한의 약2.5배, 한 반도의 1.1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며, 인구는 667만명입니다. 

인구의 약1/3인 200만이 수도는 비엔티엔(Vientiane)에 살고 있습니다.

영어표기상 비엔티엔이라고는 하지만 현지인들은 위앙짠이라 부르는데, 

이는 라오어의 독특한 영어표기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W발음을 V로 표시하기 때문입니다[예, 왓(Vat)]

종족구성은 라오족이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랴오퉁 22%, 랴오숭 9%, 베트남계 1%, 소수의 몽족과 기타 종족이 모여살고 있죠.

Laos는 Lao족과 s(나머지들) 이라는 의미가 아주 강합니다.

실제 라오스의 모든 권력은 라오족이 쥐고 있을 뿐더러 종족차별 또한 빈번합니다.

공용어는 라오스어이며, 종교는 전체 인구의 약 95%가 소승불교를 믿는 불교국가이며

우리나라 군대처럼 모든 라오스 아이들은 절에서 2년간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기후는 온난동기과우기후로서 국민의 90%가 농민이고, 최근 빡세지역에서 커피재배가 활황을 띄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74억 9000만 달러, 1인당 국내총생산은 1170달러지만,

실제 초등학교 선생의 한 달 월급이 $80 정도이며 소득에 비해 물가가 높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가지 일을 병행하는 실정입니다.

라오스는1당독재체제의 사회주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115석)이다.

정당으로는 인민혁명당이 유일합니다.



라오스 비자


한국인은 비자협정을 통해 입국피 ($1)만 내시면 15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합니다. 

2010년 이전에는 태국이나 베트남을 거쳐 라오스에 가야하는 불편함과 낮은 접근성 때문에 관광인구가 적었지만

항공협정이 맺어지고 진에어가 직항항로를 개설하면서 이제는 약 4시간이면 라오스에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오스 화폐


라오스에서는 동전을 사용하지 않고, 1,000낍, 2000낍, 10,000낍, 20,000낍, 50,000낍, 100,00낍 지폐를 사용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고액지폐는 50,000낍으로 우리돈 7,000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1,000낍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카이손 폼비한(Kaysone Phomvihane)'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폼비한은 베트남인 아버지와 라오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오스 정치인으로 1955년부터 1991년까지 라오인민혁명당 서기장을 지냈으며

1975년부터 1991년까지는 총리, 1991년부터 1992년까지는 국가주석을 지낸 인물로 1975년 왕권을 폐지하고 라오인민혁명당이 정권을 장악하는데 활약을 한 인물입니다. 


라오스 환율


$1는 약 8천낍(2012년 기준)입니다. 개인사설 환전소마다 환율 차이가 조금씩 나지만 근 차이가 없으니 그냥 환전 하는 편이 좋습니다.

환전상이 많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율에 환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100를 환전해도 500낍을 더 받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500낍짜리 지폐는 없어서 주지도 않으니 $200를 환전해야 1,000낍을 더 받습니다. 500ml 물 한 잔에 3,000낍이니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전은 달러화나 유로화가 좋으며, 아직 태국처럼 원화 환전이 활발이 이루어 지지 않으니 원화를 가지고 가시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오스 물가


단순히 $1를 8000낍으로 계산하기로 하고.

게스트 하우스 숙박비용 : 10만 낍(7~15만낍 사이)

쌀국수 15,000낍, 물 500m 3,000낍, 1.5L 5,000낍

볶음밥 20,000낍, 국수 20,000낍

햄버거 30,000낍, 과일 1kg 10,000낍, 생과일 주수 10,000낍 

마사지 40,000낍



라오스에서 존경받는 인물


위사진은 아뉴봉(Aouvong)황제의 동상으로, 한국정부가 세워준 것입니다. 메콩강변에 우뚝 서있어 새로운 관광장소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죠.

한국정부가 해줬다니 뿌듯했는데 우리 남대문은 어쩔꺼.. 

광화문에 가면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 겸허해지듯, 라오인들도 아마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오인들은 좋아하고 존경하는 3명의 왕이 있습니다. 라오스 첫 통일 왕조를 세우고 가장 왕성한 국가를 건설했던 

황제 파응움(Fa Ngum).

강성했던 버마왕조를 상대로 끝까지 항전했던 절개의 인물이자 불교도시 루앙프라방과 왕 씨앙통(Wat Xiang Thong)사원을 건축한

세타티랏 왕(Sethathirat).

라오스 저항의 역사를 대변하는 인물 

황제 아뉴봉(Aouvong).



아뉴봉(Aouvong)은 태국 아유타야왕조에 패해 속국이 되자 인질로 태국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조국으로 돌아갈 일념 하나로

태국 왕조를 위해 모든 전쟁에서 선봉에서 승리하며 태국왕조의 신임을 얻습니다. 아뉴봉의 충절을 믿은 태국은 조국 라오스로 그를 돌려보내지만 아뉴봉은 조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사를 훈련하고 태국을 공격할 군대를 만듭니다. 그 수가 30만. 당시 라오스 인구가 200만이었다고 하니

군사 30만은 라오스 젊은층의 절반 이상을 끌어모은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태국 군사사정을 잘 알았던 아뉴봉황제는 전면전으로 이기지 못하리라 판단 30만 대군을 산길로 돌아 아유타야 수도로 바로 진격 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원정길에 올랐으나, 힘든 행군 속에 속속 이탈자가 발생하였고 이 중 몇 몇은 태국에 망명합니다. 망명한 병사들로부터 침공계획을 들은 태국왕조는 즉각 토벌군대를 편성해 라오스군대 정벌에 나섭니다.

끝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아뉴봉왕은 태국에 사로잡히고 처형당하게 됩니다.

태국과 국경역활을 하는 메콩강가에서 태국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데 이 손은 태국과 함께 가자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못내 이루지 못한 태국정벌의 소망을 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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